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더 킹 오브 파이터즈 '97 (문단 편집) === 대회 역사 === [youtube(cXIaV9mPPlo)] 중국 대회의 발전 단계는 구분하기 쉽다. 2009년 이전과 2009년 이후로 볼 수 있다. 2009년 이전에는 흔히 남북 싸움, 중국의 양쯔강을 경계선으로 장쑤, 저장, 상하이 그리고 광둥, 광시 두 구역은 각각 남부를 대표하였다. 이 시기의 고수는 장쑤성 난징의 '''진홍'''. 난징 현지의 고수를 굴복시켰을 뿐만 아니라 장쑤, 저장 및 상하이의 크고 작은 시합에서 연전연승으로 현지 최고수의 자리에 있었다. 반대쪽의 흔히 광저우 소년이라 불리는 [[샤오하이]]는 이미 유명했고 KOF 97 & 98 당대 최고의 고수라고 불리고 있었다. 소년 역시 다양한 첼린지를 통해 다양한 고수한테 도전, 모두를 굴복시켰고 광둥, 광시 대회에서 모두 우승했다. 또 다른 고수는 광시의 '''TT''' 초기에는 남부 삼황으로 뽑기 어려웠으나 모든 전설은 우연히 탄생하며, 결국 TT 또한 남부의 초고수로 인정받게 된다. 남쪽의 상황은 다소 복잡하나, 북쪽의 상황은 간단하다. 동북3성에는 많은 거장들이 있으나 중심지는 선양이다. 선양의 큰 의의는 플레이어의 독특한 스타일과 기본적인 방향을 제시하였다. 남북 모두 만날 기회가 많지 않기에 당연히 이 시기 온라인에서 입씨름이 발생되어 상호간 승부를 논쟁하였다. 그러나, 한가지는 확실하다. 양측 모두 우열을 가릴 생각은 있다. 전기에 해당하는 2009년 이전에 대사건 2개가 발생했다. 첫 번째 2007년 광시 VS 선양 총격전. 당시 두 지역은 서로 상대방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실 직접 만나기에는 너무 먼 거리이나 다행히 거장들의 도움으로 중간 도시 우한에서 총격전이 결정되었다. 사상 최초 대형 오프라인 총격전, 선양의 맴버는 왕준, 우왕, 탕량, 첸루 등의 고수들, 광시는 펑보, TT, JTL, 아쥐, 파일럿 당시 광시를 실력을 대표하는 고수들이다. 우선 우한의 현지 고수들은 난징과 교류했기 때문에 난징의 수준을 잘 이해한다. 그런데 우한의 고수 야왕, 황이 등 먼저 내려온 선양군단과 붙어본 이후의 평가는 달랐다. 북방 사람들은 맹렬한 공격을 퍼붓고 있는데 타법은 정말 변화무쌍하다. 전체 수준은 난징보다 위, 광시의 고수들이 침몰할지도 모른다. 결국 첫날의 전쟁에서 북부의 고수들이 광시를 박살냈다 또한 광시는 시합이 다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도망쳤다. 두 번째 2007년 난징 VS 선양 총격전. 베이징에서 성사된 이 총격전은 과정도 결과도 극적이다. 진홍이 이끄는 난징의 고수들, 첸루가 이끄는 북부의 고수들 며칠 밤의 줄다리기가 이어지며 서로 죽기 살기로 싸웠다. 팀전 5:5, 3:3 개인전 1:1 등 이 때 양쪽에 영웅이 나타났다. 난징의 '''장쉐여우''' 다소 밀리고 있던 난징을 흐름을 원점으로 되돌리는데 성공하였다. 선양 또한 '''왕준'''의 주력 [[야마자키 류지|야마자키]]가 밀리고 있던 선양을 구원했다. 마지막 결과는 뜻밖에도 무승부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 다만 이 총격전으로 상대방의 실력을 모두 확인했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 만약 이 때 2007년 선양 VS 광둥의 총격전이 있었다면 도시 대결은 완벽했을 것이다. 광둥에는 소년 이외에 딱히 고수가 없었다. 당시의 KOF 97을 수준을 감안하면 광둥은 광시보다 약하다. 만약 성사되었다면 선양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패권자다. KOF 97 중국 제일성, 그러나 역사에는 만약이 없다. 진실은 2007년이 선양이 크고 작은 전투에서 무패를 이루는 등 우세한 상황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2007년 최고의 해를 보냈던 선양은 소위 번영과 쇠퇴에 의해 올드 선수들은 정상에 오른 후 점차 사라졌다. 젊은 맹수들은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 때는 2008년, 베이징에서 대형 KOF 97 대회가 열렸다. 소년과 [[다코우|대입구]]는 늦잠으로 베이징 대회에 불참. 난징, 광시, 광둥, 선양의 고수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패권을 다투었다. 이 대회에서 진홍이 TT에게 패배했다. 이때 난징의 진홍은 다양한 대회와 총격전을 거친 후 실력이 강화되어있었던 상태. 이미 장쑤, 저장, 상하이의 적수가 없는 초강자, 그러나 광시의 TT 또한 신들린 듯 성장하고 있었다. 진홍은 대회 직전 야전에서 거의 완벽하게 제압했다. TT에게도 우세, 하지만 진홍은 대회에서 선양의 왕청에게 패배했다. 늦게 온 소년도 왕청에게 패배했다. 그러나 TT는 왕청에게 승리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듯한 전개, TT는 침착하고 안정적인 테크닉을 기반으로 대회에서 진홍을 물리쳤다. 진홍은 비록 베이징 대회에서는 우승을 하지 못했지만 연말 상하이 루공 대회에서는 다시 최정상을 차지하였다. TT를 비롯한 많은 고수들이 참여한 가운데 진홍이 거의 무패로 우승하였다. 당시 진홍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두가지 위협이 다가오고 있었다. 첫째 TT가 다시 진홍을 이겼다. 2008년 난징의 대부호 한차례의 대회를 개최하였는데 이 대회와 야전에서 진홍은 TT에게 패배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두번째 위협이 다가오고 있었다. 2009년 중반, '''진문준'''과 상하이 한 무리의 게이머들은 난징에서 교류전을 하였다. 진문준은 어릴때 98을 가지고 놀았지만 대세 의거 KOF 97에 합류하였다. 당시 진문준은 진홍과 승부할 수준이 안되었으나, 불과 반년만에 다시 권토중래하였고 이번에는 진문준이 진홍을 압도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